<세계일보> 입력 2011.01.05 (수) 20:00, 수정 2011.01.05 (수) 23:02
“보좌관이 그만두는 바람에”상당수 청원 내용조차 몰라
“해당 상임위가 아니라서”3건중 2건 본회의 불부의
“부탁받아서 넘겨준 것뿐”지역관리 위해 내용 불문
18대 국회에 제기된 청원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숨은그림 찾기’와 마찬가지였다. 국회의원들은 ‘소개 의원’으로 나섰으면서도 청원 제기 이후 사실상 손을 놓은 경우가 많다. 담당 보좌관이 퇴직해서 아예 내용조차 정확히 모르는 사례도 있다. 특히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지역구에서 올라온 민원성 청원을 소개만 한 의원도 있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부실한 청원을 소개하거나 소개 후 처리에 ‘나 몰라라’ 하다 보니 다른 의원들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결과가 빚어지는 셈이다.
◆“보좌관이 그만둬서”, “해당 상임위가 아니라서”
“의원실에서 소개한 청원에 대해 문의하려는데요.” (기자)
“청원요? 저희 그런 것 한 적 없는데요.” (의원실 보좌관)
“애국지사 예우와 관련한 청원이었는데요.” (기자)
“담당 보좌관이 퇴직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어요.” (보좌관)
모 국회의원이 ‘소개 의원’으로 나선 청원 처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의원실 측과 통화한 내용이다.
다른 의원실 상당수도 소개한 청원 내용과 처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금과 관련된 청원 등 3건을 소개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다른 보좌관이 있을 때 한 것이라서 알지 못하고, 관련 상임위에 있는 청원이 많다 보니 처리되지 않은 것 같다”고 무책임하게 답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해당 의원실에서 소개한 청원 3건 중 2건은 본회의에 올리지 않기로 불부의 처리됐다.
환율과 관련된 청원을 소개한 한 의원실은 청원이 지난해 본회의 불부의됐는데도 아직껏 계류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택시 규제와 관련된 청원을 소개한 한 의원실은 해당 청원 진행상황을 문의하자 “너무 오래된 청원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결과 통보가 아직 없는 걸 보니 (청원 처리가) 안 된 것 같다”고 무책임하게 답변했다.
청원을 소개하긴 했으나 청원을 다루는 상임위 소속 의원이 아니다 보니 처리에 한계가 있다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주거환경과 관련된 청원을 소개한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청원을 다루는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찾아가 설명하는 등 노력했지만 의원이 해당 상임위가 아니어서 한계가 있어 아직 계류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지역 민원이라 어쩔 수 없어서…”
국회의원들이 소개한 청원은 자신이 속한 지역구와 관련된 민원 비중이 작지 않다. 국회에서 다뤄질 만한 수준에 못 미치는 청원마저 소개한 의원도 있다. 의원들이 청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기보다 민원 처리쯤으로 여기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18대 국회에서 4건의 청원을 소개한 한 의원실의 경우 3건은 해당 의원의 지역구에서 낸 민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 민원이 들어와서 청원을 소개했지만, 의원이 관련 상임위도 아니라서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지역 민원성 청원 중 시설물 이전, 존치, 설치반대 등의 사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8대 국회에서 이 같은 청원 10여건이 ‘소개 의원’을 거쳐 국회에 제출됐다.
그렇다 보니 특정 시설물을 놓고 존치를 원하는 측과 이전을 바라는 측 청원이 한꺼번에 들어온 사례도 있다. 경북 칠곡군 고속철도 약목보수기지 내에 있는 컨테이너 적치장을 놓고 한나라당 김태환(경북 구미시을), 김성조(경북 구미시갑) 의원실은 존치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소개했다. 반면 같은 당 이인기(경북 고령·성주·칠곡) 의원실은 이전 또는 폐쇄를 바라는 내용의 청원을 소개했다.
군 부대가 해당 지역으로 오는 걸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을 소개한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가 소개를 하긴 했으나 청원이 소개할 만한 건은 아니었다. 부탁을 받아 넘겨준 것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사건팀=이강은·나기천·이귀전·조현일·유태영 기자 society@segye.com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국회 상대 소송… 결국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기도
국민의 목소리가 담긴 청원이 제때, 제대로 처리되지 않다 보니 청원인이 소송이나 고소·고발을 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부추실)는 2007년 낸 청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2008년 5월 17대 국회 회기가 끝났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부추실은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2009년 원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판결했다.
부추실은 2008년 한나라당 모 의원을 검찰에 고소한 적도 있다. 국회의원의 법률 행위에 대한 고소는 당연히 각하됐다. 부추실이 이토록 청원에 매달리는 이유는 1996년부터 ‘금융분쟁 조정기관의 부작위에 따른 피해보상에 관한 청원’을 매 국회에 제출했지만 제대로 처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단체 대표 박흥식씨는 “청원이 청원심사소위를 거쳐 정당하게 논의되고 정무위 차원에서 결론이 나왔다면 청원은 한 번으로 그쳤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6번의 청원 가운데 4번은 국회의원 임기 만료나 뚜렷한 이유 없이 연기돼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국민의 의견에 목소리를 기울여야 할 국회의원들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났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청원법에 의하면 청원은 90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의장에게 통보해야 한다. 연기의 사유가 있으면 60일을 추가로 쓸 수 있지만 그 연장의 이유를 청원인에게 알려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청원에 대해 국회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부추실이 답답한 마음에 같은 해 6월에 청원 방식에 대한 정보공개를 신청했지만 돌아온 건 “(청원이 원래 그러니) 양해해 달라. 기다려 달라”는 답변뿐이었다.
본 기사에 대한 부추실의 평가
부추실 박흥식 상임대표는 세계일보가 위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 편집국 사회부 기자가 부추실에 찾아와서 박 대표와 무려 4시간 동안 인터퓨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정무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장인[공성진 국회의원이 2008년도 국정감사후 피감기관인 금융감독원]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기 위해 본 청원은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가 끝났다며, 청원인을 국회에서 내 몰아 팽게쳐 버리면서 더 이상 본 청원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이에, 부추실에서는 국회의원 등이 청원심사 및 국정감사 등에 대한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등의 범죄행위를 인지한 후 제18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 김형오 외 29명을 고발한 사실에 대한 검찰의 처분결과 및 정무위원회가 피감기관인 기술신용보증기금,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를 도와주고 뇌물을 받는 직무[정순영 수석전문위원은 구속되었음]에 대해 검찰은 국회가 청원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면서 불기소 처분(검사의 직무유기, 직권남용)과 청원심사소위원회가 2년만에 개의하여 심의한 결과[직무유기및 직권남용 등]에 대해 전체회의를 거쳐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에 조치촉구 및 결과보고 요구]에 대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음에 대하여 실체적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은 관련기관들에 대해 모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추실은 세계일보 사건팀이 청원제도 개선에 관한 보도기사는 격찬하지만 관련기관들의 부작위 행위에 대하여 보도하지 아니한 것은 언론기관의 횡포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