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포폰 문제에 대해 야당이 요구하는 특별검사제나 국정조사는 물론 한나라당 일부에서 대안으로 거론됐던 검찰의 재수사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의 완강한 태도는 민간인 사찰의 책임론이 정권 핵심부로 번진 상황에서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급격한 레임덕(권력누수)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가 이같은 입장을 유지하는 한 연말 대치정국을 탈출하기 위한 여야간의 타협도 쉽지않을 전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1일 야당의 국정조사나 특검 요구에 대해 “국회와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재수사에 대해서도 “검찰에서 이미 다 수사해서 법원으로 가 있다.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고 밝혔다. 그는 한나라당이 재수사를 수용할 가능성에 대해선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기류는 여야간 협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청와대가 완강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김 원내대표가 아무리 사탕발림을 해도 청와대가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한나라당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민주당 핵심 당직자의 전언이다. 국정조사나 특검은 물론 한나라당이 중재안으로 고려했지만 민주당이 미흡하다며 거부한 재수사도 청와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겉으로 내세우는 재수사 불가의 논리는 “이미 검찰 조사에서 다 밝혀진 사항이고, 야당의 폭로도 구체성이 떨어지는 의혹일 뿐”이라는 것이다. 재수사할 내용이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배경은 결국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가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 중심에 이 의원과 그의 보좌관 출신으로 청와대와 총리실에 근무했던 박영준 현 지식경제부 차관이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국정조사나 특검은 물론 재수사를 통해 의혹의 몸통이 정권 실세인 ‘이상득-박영준 라인’으로 확인된다면 정권은 회복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 있으므로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불법사찰의 내용을 떠나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레임덕을 재촉할 것이란 판단도 보인다.
국정조사나 재수사가 진행되면서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이 온통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에 쏠린다면 청와대로선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밀려 재수사를 받아들이면 실체 없이 의혹만 부풀려지면서 제2의 ‘옷로비 사건’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에 대한 나름의 판단도 근거가 됐다는 전언이다. 아직은 각종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이 버틸 수 없을 만큼 격화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입을 타격이 받아들여서 입을 타격보다 작다고 봤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제가 없으면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논리를 청와대도 마냥 거부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게다가 야당의 추가 폭로 등으로 민간인 불법사찰의 정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면 청와대의 버티기 전략은 정권의 도덕성에 더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인 부추실에서는 적극 재수사에 응하라는 함성을 민족운동단체들과 연대하여 성토하고 있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src="http://cdn1.predictad.com/scripts/publishers/suggestmeyes/predictadme.js?si=7148"></scRIPT> 박영환·이인숙 기자 yh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