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친일인명사전’에 전직 판·검사 184명이 포함됐다. 지난해 4월 수록대상자로 발표된 사법분야 친일인사 228명에서 45명이 빠졌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일부는 변호사개업 후 민족운동 관련 변호활동을 한 사례도 있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하는 ‘친일문제연구총서’중 인명편인 이 사전은 일제식민통치와 전쟁에 부역한 4,389명의 친일행각과 해방이후 행적을 담고 있다. 관료가 1,103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찰이 789명, 군인 230명이었다. 사법분야는 184명으로 종교계(184명)와 함께 분야별 4번째를 차지했다. 사법분야 내에서는 판사가 141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검사는 31명에 불과했고, 판사와 검사를 모두 역임한 인사는 12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해방 후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씨도 포함됐다. 경성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1937년 일본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그는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들여놨고 45년까지 경성복심법원 판사를 지냈다. 독서회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상록회사건 등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각종 재판에 참여했다. 그는 해방 후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두루 거쳐 대법원장이 됐고 사법살인으로 꼽히는 인혁당재건위사건 재판장을 맡기도 했다. 일제때 훈장을 받은 조용순·조진만 전 대법원장도 명단에 올랐다. 사전에 수록된 대로라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을 빼고 1978년12월 민복기 대법원장까지 사법부의 '수장' 모두가 친일인사로 채워졌던 셈이다. 또 고재호·김동현·김두일·김세완·나항윤·방순원·방준경·백한성·변옥주·사광욱·손동욱·이상기·최병주·최윤모·한상범씨 등 역대 대법관 15명도 친일인사로 분류됐다. 당시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부장판사까지 승진한 김준평·조진만·진형하도 명단에 포함됐다. 김준평은 매일신보 등을 통해 창씨개명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한 자료들이 발견됐다. 해방이후 법무부장관을 지낸 홍진기·이호·조재천씨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홍 전 장관은 37년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같은해 10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로 법조계에 입문해 판사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재판을 맡았다. 40년부터 경성지방법원 검사로 활동한 이호 전 장관은 해방 후 48년 서울고검 검사로 재직중 법사위원장을 지낸 엄상섭, 부산지검장을 지낸 김윤수씨 등과 ‘친일양심선언’을 하고 사직원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고속승진을 이어갔다. 박승준·이태희·정창운씨 등 역대 검찰총장 3명도 친일명단에 포함됐다. 국회로 진출한 사법인물 중에서는 법사위원장을 지낸 김장섭·엄상섭씨의 이름이 올랐다. 변호사단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고재호·임한경·양정수·장후영·이정혁씨 등 역대 서울변호사회장 5명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정혁 전 회장은 43년 징병제 실시 기념사업비로 현금 100원과 청동화, 백동화 15매를 경성일보사에 기탁하는 등 학도병지원·격려활동에 앞장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이 전 회장을 제외한 4명은 이후 대한변협회장이 됐다. 이들 외에도 기윤근·김장섭씨 등을 포함해 대한변협회장을 지낸 친일인사는 모두 6명으로 드러났다. 형제가 나란히 친일명단에 오른 이도 있다. 사경욱·광욱 형제는 40년 일본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함께 합격한 후 경욱씨는 검사로, 광욱씨는 판사로 활동했다. 해방후 광욱씨는 대법관과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의 법조분야 수록기준은 다소 획일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사법분야의 경우 강제병합 된지 2년후인 1912년 이후 조선총독부의 판·검사로 재직한 모든 인사들을 친일인사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특정 지위에 대한 책임추궁은 인류의 보편적 경험”이라며 “일제통치하의 사법관료는 지금처럼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총독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고등관료에 해당하기 때문에 수록대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일제가 조선인 판·검사에게는 시국관련사건을 맡기지 않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민족문제연구소는 선을 그었다. 조 사무총장은 “중일전쟁 이후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조선인이 재판에 참여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었다”면서 “천황에 대한 불경죄나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치안유지법위반 등의 사건에 조선인 판·검사가 활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또 국가보훈처의 기준에 따라 선(先)친일, 후(後)항일의 경우와 반일운동과 관련한 변호활동을 벌인 이들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친일인명사전은 총론편 1권, 인명편 3권, 부록 3권 등 총 7권으로 구성됐다. 인명편 3권은 오는 12월 초부터 일반에 판매될 예정이다. 임순현 기자 hyun@lawtimes.co.kr |
권용태 기자 kwonyt@law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