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보도(步道)에 디자인을 입힌다며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점자블록'을 제멋대로 바꾸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디자인'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법령이 권고하고 있는 황색 대신 검은색과 스테인리스 점자블록을 설치, 시각장애인과 저(低)시력 장애인의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7번 출구. 이곳에서 보문로까지 700m 구간은 '디자인서울거리'로 꾸며져 이날 준공식을 가졌다. 디자인서울거리는 기존 거리의 보도·가로등·간판 등에 디자인 요소를 반영해 새롭게 바꾼 것으로, 현재까지 시내 5곳(총 길이 3060m)이 조성돼 있다. 문제는 이들 거리에 깔린 점자블록의 상당수가 회색 보도와 비슷한 색인 검은색, 빛을 여러 각도로 반사시키는 스테인리스로 돼 있어 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전국 저시력인(低視力人)연합회 미영순 회장은 "저시력인들에게 검은색 점자블록은 움푹 파인 웅덩이처럼 보이고, 스테인리스 점자블록에서 반사되는 빛은 시야를 더욱 혼란스럽게 방해한다"고 말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도 점자블록은 원칙적으로 황색을 사용하되, 바닥재 색상과 비슷해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에 다른 색으로 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실외에 설치하는 점자블록은 햇빛·불빛 등에 반사되거나 눈·비 등에 미끄러지기 쉬운 재질을 사용하지 않도록 명시했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일부 구(區)들은 보도와 비슷한 색의 점자블록이 있어야 디자인이 살아난다며 검은색과 스테인리스 점자블록을 깔고 있다.
디자인서울거리뿐 아니라 롯데백화점 본점 건너편 명동입구 보도와 숭례문에서 남대문로와 태평로 쪽으로 가는 횡단보도에도 검은색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다. 명동 지하에는 점자블록 위에 유리문까지 설치,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블록을 따라 걷다 보면 유리문과 충돌하게 돼 있다.
시각 장애인과 저시력 장애인들은 "행정기관들은 점자블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고, 안전보다는 디자인이 중요한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해당 구들은 "황색은 권장사항이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색을 쓰는 사례가 외국 도시엔 종종 있다"며 "안전 문제는 검토를 거쳐 개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곽수근 기자 topgun@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