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 대법원에 요구
'내부비리 고발 판사 징계처분 취소하라'
국민권익위는 지난 24일 대법원에 정영진 부장판사에게 내린 '정직' 처분을 취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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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내부 비리 의혹을 제기한 판사를 중징계했다가, 국민권익위원회(옛 국가청렴위)로부터 징계처분을 취소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국민권익위는 지난 24일 대법원에 정영진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에게 내린 '정직' 처분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정 판사는 지난해 초부터 법원 내부게시판에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한 비위 의혹 해명과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7월엔 대법원이 '업무지원비' 명목으로 판사들에게 30만~5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자, "대법원의 예산 전용(轉用) 의혹이 있다"며 이를 당시 국가청렴위에 신고했다.
대법원은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징계 청구(8월)에 따라, 그해 10월 정 판사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법관 품위 손상' '법원 위신 실추' 등이 이유였다.
정 판사는 국민권익위에 "부패행위 신고에 따른 신분상 불이익을 받았다"며 '신분보장조치'를 요청했다가 "신고 내용이 부패행위인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지난 4월 감사원의 2007년도 대법원 예산 집행실태 감사에서 대법원이 예산 79억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감사원 조사결과 대법원은 '특정업무경비'로 배정된 예산 중 52억원을 판사 업무 추진비·직원회식·외빈접대 등 예산 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감사원의 '주의 조치'를 받았고, 정 판사는 지난 6월 국민권익위에 '재심(再審)'을 청구했다.
국민권익위의 조치 요구를 이행하지 않으면, 징계를 내린 자가 형사처벌받을 수 있다.
사법개혁의 실천 - 대법원의 자성을 촉구하며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위반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독재권력이 사라지고 민주화된 지금 사법권력은 한국 사회의 중심에 서서 국민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의 사례에서만 보더라도 정치, 경제, 사회 각계, 각층에서 중요 인물들이 사법부의 심판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중이고, 중요 국책사업이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사업진행이 중단되거나 속개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법작용이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는 현 상황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고 국민 모두가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불신받는 사법권력에 대하여는 패자가 그 판결에 승복할 수 없음은 물론 승자도 그 승리를 자랑할 수 없다. 사법신뢰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저 사법부를 비난만 하고 있거나 자성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십수년 전부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사법개혁 관련 법안들의 국회 통과이다. 이 법안들이 아직도 일부만 통과하고 일부 법안들은 심의조차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를 성토만 하고 있는 것은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민들이나 언론 기관 모두 나서서 그들을 때로는 설득, 때로는 질책을 하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하여야 한다. 그들의 성실한 입법업무 수행을 촉구하는 서신이나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고, 헌법상 보장된 다른 평화적 표현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보다 조직화된 입법촉구활동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일부나마 통과된 사법개혁법률안들의 엄정한 시행이다. 개정된 법관징계법, 검사징계법, 변호사법 등 법조윤리 관련 법규들은 엄정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나아가 그 동안 사문화되어 있었다고 할 정도로 활용도가 낮았던 법관, 검사 등에 대한 탄핵소추, 탄핵심판 절차도 적극 이용되도록 하여야 한다. 일부 판검사들의 심정적 반발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잘못에 엄격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단죄할 수 있겠는가?
다음은 사법의 투명성이다. 법원의 모든 재판진행절차가 법원 홈페이지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듯이 검찰, 경찰, 변호사 기타 영역도 수사기밀, 프라이버시 부분 등을 제외한 가능한 모든 범위에서 최대한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심지어 택배 물건조차도 소비자에게 배달되기까지 이동경로가 실시간 추적되기도 하는 고도 정보화 사회에서 고액의 보수를 지급받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인이나 개인 또는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검찰, 경찰 등 행정조직이 위와 같은 투명한 서비스를 제공 못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재판절차는 물론 검찰, 경찰, 변호사 기타 영역에서의 절차도 그 본래적 기능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녹음 또는 녹화가 실시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장치는 법조비리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데 가시적인 기여를 하게 됨은 물론 법정 소란행위 등에 대한 채증 기능도 겸하여 권위있는 법정질서 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재판진행 녹음파일을 비롯하여 법원 전산시스템에 저장되어 있는 판결 파일, 재판 정보, 기타 정보공개의 대상이 되는 모든 정보를 개별 국민에 의한 정보공개 청구를 기다리지 않고 국민 일반에 공개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법원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됨은 물론 논란이 많은 전관예우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과연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실제 재판 과정이나 재판결과에 있어 우대를 받고 있는지, 받고 있다면 어느 정도 받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전관예우라는 것이 없음에도 사건 당사자가 언론보도나 소문만을 근거로 고액의 선임료를 주고 전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불로소득을 하게 된다는 점, 만일 전관예우가 있다면 징계처분, 형사처벌, 탄핵소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관계자를 단죄하여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위와 같은 확인은 그 실천적 의미가 매우 큰 것이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단, 양형편차의 해소를 위하여 양형기준제 뿐만 아니라 양질의 양형 데이타베이스 시스템의 확충도 고려되어야 한다. 양형 데이타베이스 시스템은 일본, 호주, 영국, 미국 일부 주 등에서 오랫동안 시행하여 오고 있는 것으로서 전산으로 처리되므로 그 어느 방법보다 정확성이 보장되고, 국민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하여 종전 양형례를 검색하여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양형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법관들 스스로 사법권 독립을 수호하면서 권력이나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른 소신 재판을 하는 것이다. 최근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위반 사건 등에서 사법부의 과거 판결 내용이 문제되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실정법에 따른 법적용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의 변명들도 나왔지만 필자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부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투옥되고, 고문 받아 불구자가 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였지만 법관들이 소신 재판을 하였다는 이유로 똑같은 피해를 당하였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권력이나 인사권자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재판을 한 사람들이 출세가도를 달려 고위 법관이나 대법관을 하고, 퇴직 후에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관계자들이 당시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의 변명만 할 수 있는가? 최소한의 사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신헌법에 찬성투표한 국민들에게로 책임전가를 할 수 있는가? 아무리 국가권력이나 국민 대중이 압력을 가하여도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재판을 하는 것이 사법권 독립 아닌가? 유신시절 정작 본인은 형사재판을 별로 담당하지 않았던 대법원장이 말로만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하였으면 모든 것이 청산된 것인가? 반성한다면 당시 왜 그런 일이 발생하였는지, 모든 법관들이 다 그러하였는지, 무죄 판결이나 비교적 가벼운 양형을 한 법관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무죄판결 등을 하였다 하여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외에 다른 큰 불이익을 당한 바 있었는지 분석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법관들 일부라도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고 재판하는 일이 없도록 법에도 없는 고등부장승진제도는 사실상으로도 폐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전관 예우 의혹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그 진상을 소상히 밝히고, 획기적 개선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법원이 제대로 된 반성과 사법개혁을 하지 못하는 경우 법원은 사법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정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