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 등 각종 재판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전문심리위원제도’가 시행된지 9개월이 지났으나 아직까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전문심리위원 활용사례 발표 등 제도활성화를 위한 법원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심리위원제도는 첨단산업, 지적재산권, 국제금융 등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법원 외부의 관련분야 전문가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재판부가 재판진행 중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제도로 작년 8월 민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이 제도는 시행초기 큰 관심을 끌었으나 올해 2월까지 전국 법원에서 전문심리위원이 활용된 사례는 서울고법 4건, 서울중앙지법 4건 등을 포함 모두 62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법원을 제외한 26개 각급 법원 중 20개 법원만 전문심리위원을 이용해 법원별로 제도활용도에 편차가 심하고, 위원을 이용하는 재판분야도 의료 22건, 건축 18건 등으로 특정분야에 편중돼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김필곤 부장판사는 지난 4~5일 경기도 용인소재 대웅개발경영원에서 신영철 법원장과 이동명 민사수석부장판사 등 민사부 법관 124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08년도 민사재판장 워크샵’에서 이같은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김 부장판사는 “전문심리위원이 없었다면 재판부가 일일히 해당분야 논문을 찾아보는 등 애로사항이 많았을텐데 전문심리위원이 직접 자기 논문을 요약해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조언을 해줘 도움이 많이 됐다”며 “일반사건에서도 적극적으로 전문심리위원을 활용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는 현재 건축, 토목, 의료 등 총 8개 분야에 948명의 전문심리위원 후보자를 등록해 놓고 있으며, 작년 제도시행을 위해 16억원의 예산을 배정했으나 집행액은 고작 17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심리위원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서면으로 설명이나 의견을 제출할 경우 사건당 20만원, 서면제출없이 직접 재판기일에 출석해 설명이나 의견을 진술할 경우 30만원, 서면제출과 함께 재판기일에 출석해 의견도 개진한 경우는 40만원의 기본수당을 받는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이 한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변론기일이 계속 이어질 경우 전문심리위원이 매번 출석하는 것은 어렵다”며 “의사들의 경우, 기본수당이 자신들이 그 시간에 벌 수 있는 액수보다 적어 애초에 전문심리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장은 사안의 난이도나 소송참여에 소요된 시간등을 참작해 수당을 최대 5배까지 증액할 수 있어 전문심리위원이 사건당 받을 수 있는 최대수당은 2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며 “실제로 진행했던 사건에서 전문심리위원에게 70만원의 수당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심리위원제도는 수당보다는 위원들의 중립성 확보가 더 시급한 문제”라며 “이들은 해당분야의 최고의 전문가인 만큼 그동안 양측 당사자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원이 의사라면 의사인 당사자 편을 들고 싶지 않겠냐”면서 “같은 직역이어서 직업상의 약점이나 헛점을 들춰내기 싫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중립성 확보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올 9월 경에 전문심리위원제도 현황과 과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아직은 당사자들이 이 제도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신청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법원이 적극적으로 직권에 의한 참여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원 별로 전문심리위원의 활용사례에 관한 발표를 해 새로운 제도에 관한 활용경험을 다른 재판부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