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순신
정국이 혼탁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정치문화보다는 자신들의 사익을 위한 칼바람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모습에 국민들은 다시 식상하고 있다.
혹자들은 몇 년 전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보다 후퇴라는 말을 공공연히 쓸 정도로 합리적인 정치문화가 정착이 되고 있질 않다.
연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던 서울시내의 택시운전기사들이 이제 다시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공천과 청와대의 인선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잘 되지 않고 누구나 인정하는 민주주의 원리가 잘 지켜지지 보다는 순간적인 힘의 균형관계로 혹은 편의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심사하고 선발하면서 개혁이라는 말이 잘 쓰여 지고 있지만 이러한 개혁이란 단어에 동의하는 국민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란 목소리가 권력자들의 편의적인 해석으로 둔갑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주말오후면 다시 보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얻고 다시 나라사랑의 마음을 되새긴다.
죽도록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들을 위한 삶을 실천한 대가는 간악한 무리들에 의한 당쟁의 도구로 대역죄인의 반열에 올라서 육신과 영혼이 ??기는 고문과 백의종군이 그가 나라에 충성한 대가로 받는 것이었지만, 다시 다 찢어진 육신과 영혼을 추스르고 무능한 군주 선조의 명을 다시 받아 다 파하고 남은 12척의 전선으로 삼도수군통제사의 깃발을 잡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지 않는가?
“전하 저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가히 이순신 장군은 충신(忠臣)중의 충신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조선의 부패한 권력상은 구한말 대한제국(大韓帝國)이 멸망할 때가지 새로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충신하나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당쟁문화에 젖어서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는 아둔한 역사를 갖게 되었지 않았는가?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나라를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고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명분을 주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정치문화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 열심히 준비하고 공적인 영역을 위해서 많이 기여한 사람들이 득세하고 국가 경영의 키를 잡을 때에 국민들이 감동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바른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새로운 정부의 좋은 정치를 기다리고 있다.
민주주의 기본 작동 원리가 살아나고 지켜질 때에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소박한 신념을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더 좋은 정치를 위한 절제된 마음으로 자신의 행동반경을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이다.
2008.3.17일 박태우 박사의 푸른정치연구소(www.hanbatfor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