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는 구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실생활과 닿아 있는 정책으로 표현될 것이다. 얼마전 정부가 발표한 서민희망예산이 1탄이다. 지금은 좌우에서 갸웃거리지만 연말쯤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자신이 있다.”
‘3기 청와대’의 대표적 합리주의 정책브레인으로 통하는 김두우 청와대 기획관리실장이 최근 사석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공정사회론’이 단지 구두선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이다.
그러나 연일 ‘공정’을 외쳐도 아직 바닥민심은 미지근하다. ‘좋기는 정말 좋은데… 이 대통령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다’는 느낌도 대통령 아젠다와 민심간의 거리를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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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요구와 일치하지만 = MB정부의 ‘공정한 사회’는 95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국정아젠다로 제시한 ‘역사바로세우기’와도 닮았다. 결과만 보면 YS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성공한 아젠다로 손꼽힌다. 그렇다면 ‘공정사회론’도 성공할 것인가.
두 아젠다는 제기된 시기나 시대적 요구, 정치적 배경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역사바로세우기’는 YS의 집권 3년차인 1995년 시작해 이듬해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법적 심판대에 세움으로써 마무리됐다.
집권 3년차는 5년 임기 중 반환점을 도는 해다. 곳곳에 레임덕 조짐이 시작되는 시기다.
집권 3년차 YS는 6·27지방선거에서 패배, 정치적 위기에 몰린 해였다. 그해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 계좌를 폭로, 여권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제기됐다.
MB의 ‘공정사회’ 역시 집권 3년차인 2010년 출발했다. 6·2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지방권력이 사실상 야당으로 넘어간 위기국면에서 나온 것이다. 두 아젠다 모두 ‘위기상황에서 국정운영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선제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시대정신과 부합된다는 점도 닮았다. 역사바로세우기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더욱 거세진 ‘5·18 문제해결’이라는 시대정신과 일치했다. ‘공정사회’ 역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 문턱에 와 있지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전반의 불공정을 해결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맞아떨어진다.
◆국민참여와 구체성 확보가 숙제 = YS는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여권에겐 부메랑이 될 수 있던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활용했다. 95년 연말에는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수감하고, 이듬해 5·18특별법까지 제정했다. 국민은 박수쳤고 이듬해 4·15 총선에선 여당인 신한국당에 완승을 안겨줬다. 이는 30년 군부통치를 접고 출범한 문민정부만이 할 수 있는 역사적 과업에 대한 여론의 지지와 참여 속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공정사회론’은 이 대목에서 ‘역사바로세우기’와 차이를 보인다. ‘역사바로세우기’는 ‘5·18 해결, 전두환 등 군사쿠데타 세력 심판, 헌정왜곡 회복’이란 구체적 목표와 대상이 존재했다. 반면 ‘공정사회론’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추상적이다.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다.
또 ‘역사바로세우기’는 ‘5·18의 직접 피해자인 DJ가 아닌 YS이기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감이 뒷받침됐다.
반면 ‘공정사회론’의 출발선상엔 ‘CEO출신 보수정권 대통령이 진보적 아젠다를 주도할 수 있을까’란 의문부호가 놓여있다. 현정부가 해결하기 쉽지 않은 양극화 확대 등 금융위기의 부산물도 또다른 장애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거리낌 없이 해낼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김두우 실장은 “일부에선 김태호 후보자 낙마와 유명환 장관 딸 파문으로 공정사회론이 첫발부터 정당성을 훼손당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이 두 사건을 과거와 달리 전격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공정사회론의 정당성과 대통령 의지를 분명히 하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의 장담처럼 ‘공정사회론’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살을 베는 노력과 국민의 참여가 불가피한 조건이다.
홍덕률 대구대 총장은 “공정사회 아젠다는 사회 곳곳의 불공정 인식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일이므로 국민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사회지도층이 손해를 감수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고 이를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구체적 정책으로 진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