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검찰이 한명숙(65) 전 총리를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함으로써 한 前 총리가 인사청탁 명목으로 곽영욱 전 사장으로부터 "돈(5만 달러)을 받았는가, 아닌가?'에 대한 치열한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전직 총리와 입증하기 어려운 '뇌물죄'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일 검찰은 곽 전 사장의 진술에만 외존한 약점이 있지만 그 진술의 합리성과 일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동안 꾸준히 수사를 진행해 인사 개입에 대한 정황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사건의 대부분은 준 사람은 있지만 받은 사람은 없는지라 혐의를 입증하려면 정황증거의 합리성과 진술자의 일관성이 중요한 법이다. 검찰의 기소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곽 전 사장은 평소 잘 알던 한 총리에게 공기업 사장직을 부탁한다. 2006년 11월에 산자부 고위 공무원은 "석탄공사 사장으로 지원하라!"는 전화를 곽 전 사장에게 건다. 12월 20일, 정세균 산자부 장관 등과 총리 공관을 방문하게 되고 한 전 총리는 석탄공사의 상급기관장인 정세균 장관에게 곽 전 사장을 잘 봐 주시라고 말한다. 이날 곽 전 사장은 5만 달러를 건넸다고 주장하는데 총리 공관 회동 6일 후, 곽 전 사장은 석탄공사 사장에 응모해 1순위가 됐으나 차후 정치적 고려로 탈락하게 된다. 이에 한 전 총리는 전화로 "곧 다른 공기업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2007년 3월에 한국전력 임원으로부터 "지원서를 내라"는 전화를 받은 뒤, 곽 전 사장은 곧바로 한전 자회사인 '남동발전'사장에 임명이 됐다. 여기까지가 검찰이 공개한 기소 내용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한 전 총리 측은 "짜맞추기" 수사라며 '뇌물수수 혐의'를 일축했다. 또한, 일각에선 정 장관은 총리 공관 회동 9일 뒤 장관에서 물러 났고, 한명숙 총리는 곽 전 사장이 남동발전 사장에 임명되기 한 달 전 사퇴했으니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명(命)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괄하던 한 총리와 석탄공사를 지휘하던 정세균 장관, 그리고 곽 전 사장이 한날 한시에 만났다. 또한, 한 총리가 정 장관에게 "곽 사장을 잘 부탁한다(곽 사장의 진술)"고 했다면, 5만 달러 수수는 차치하고, 설령 덕담이라 할지라도 현직 총리로서 상급기관장에 '잘 부탁한다!'라고 했으니 인사 개입이 의심되는 정황이다.
법원은 뇌물수수 혐의를 정황증거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중요한 정황증거가 당시 산자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법정공방을 대비해 다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산자부 2차관이 곽 전 사장에게 '사장으로 지원하라!'고 전화를 했고, 과장은 곽 전 사장 집을 방문해 석탄공사 사장 임명에 유리한 정보를 전달 했다. 당시 산자부는 석탄공사 사장 후보를 최종적으로 선정해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기관이었는데 그런 상급기관의 2차관이 관할 공기업의 사장직에 특정인에 전화를 걸어 지원하라고 귀뜸하고 사장 임명에 유리한 정보까지 전달했으니 한 전 총리든, 아니면 누군가든 곽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에 앉히려고 분명히 움직였다.
그런데 한 전 총리는 석탄공사 사장에서 탈락된 곽 전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공기업으로 간다고 했으니 이는 그전부터 한 전 총리가 개입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이 있는 여러 증인들을 소환해 특정 진술을 확보했다고 하니 법정에서는 누가 곽 전 사장을 도왔는지 낱낱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을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도 뭣 때문에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에게 잘 부탁한다고 했고 무슨 이유로 탈락한 곽 전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곧 다른 공기업으로 간다고 했는지만 밝히면 이번 뇌물수수 사건은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곽 전 사장은 법정관리 중인 대한통운 사장으로 있으면서 150억의 회삿돈을 빼내 80억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할 일인데 횡령한 돈 중에 포함돼 있을 5만 달러를 만약 한 전 총리가 받았다면 이는 뇌물죄를 넘어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에 또한번 심각한 타격을 입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능력 없는 정권은 언제나 도덕성을 앞세운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더불어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죄가 입증되면 참여정부는 '능력도 없고 도덕성도 없었다!'란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검찰이 '공개한' 정황증거만으로는 뇌물수수혐의가 법정에서 입증될지는 미지수이다.
한 전 총리는 총리를 지냈고 친노 진영의 최고리더에 속한다. 이런 거물을 검찰은 자신있게 기소했는데 정황증거의 합리성과 곽 전 사장 진술의 일관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소장 내용으로 봐선 아직 혐의 입증을 위한 결정적인 한방은 없다. '한명숙 사건'에서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하면 검찰은 엄청난 후폭풍을 맞아야 할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차치하더라도 아직까지 유리한 것은 한명숙 전 총리 측이다. 그러나 뇌물죄가 입증이 어렵다고 해도 결국 범죄행위인 이상, 반드시 증거가 어디에든 남아 있다. 그 정황증거를 검찰이 가진 모든 네트워크를 가동해 찾아야 한다. 자신있게 기소한 이상, 검찰은 '한명숙 사건'에 검찰의 명예와 사활을 동시에 걸어야 마땅하다.
선진미래연대 조직국장 차기식.